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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를 잠시 중단하며

드디어 인생에서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습니다. 이제 14시간 뒤면 육군훈련소에서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겠죠.

그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많은 장소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무나 가는 군대인데 너무 요란하게 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아 너무 기쁩니다.

조용히 제 블로그 깊숙한 곳 어딘가에 이 글을 묻어놓는 것도 너무 요란하게 입대하는것 같아 내린 결정입니다.

이건 지난 날들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이정표를 세울 겸 정말 그냥 두서없이 작성한 감사의 글이자 회고의 글입니다.

친구가 없어 울던 아이

전 누군가 항상 제 컴퓨터 지식을 칭찬하면 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성과 실력을 등가교환했다구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5년전 순화해 말해봐야 괴짜나 너드의 끝을 달리던 제겐 컴퓨터 지식이 전부였죠.

5년 전 뒤풀이 연락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중학교를 졸업하며 울던 전 친구만큼은, 친구 사귀는 법 만큼은 어떻게든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와서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알려주던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덕분에 코로나라는 상황 속에서도 최고의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해준 숭덕고등학교 동창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물에 빠뜨리면 입만 위로 뜨겠다

대학교 입학후 다이나믹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늘어난건 저보다 실력이 아쉬운 분들을 향한 유무형의 화살들이었습니다. 물론 제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오히려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실력보다 아쉽다라는걸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잘 생각해보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텐데, 조금 더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실제로 그걸 당장 실천할 자신은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제가 가장 싫어하는 상이 제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실에 있으면서 분명 잘 마무리했어야 하는 일들을 항상 처음에 던진 말보다 못하게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번아웃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해야할 일을 대충 처리한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연구과제 중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함께 참여하고 있었던 다른 기관 분들께 여러분께 제가 나서서 사죄를 드린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지능영상미디어인터페이스연구실의 형들, 더 잘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고 전합니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더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오겠습니다.

불모지 같던 과 생활에 내리는 단비

전 작년 학과 사람들과 일절 교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저와 비슷한 처지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막 학부에서 학과로 분리되어서 학생회도 없었고, 당연히 학과 생활 이벤트도 없었으니까요.

이를 어찌해보려고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동아리 역시 이벤트가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학과의 유령 인간이었던 제가 막바지에라도 과 사람들에게 이름이라도 알릴 수 있었던 건 컴공 나무벤치 파티 여러분 덕분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무벤치에 들르면 늘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익숙한 얼굴들 덕에 학과에 잘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나벤파티” 여러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입대 직전까지도 과 생활이란걸 해보지 못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미숙한

고등학교에서 함께 같은 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모두 코로나때문인지 과 생활도 제대로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만날 사람들은 잘 만나고 다닌다고 하지만 최소한 제 주변엔 연애 역시 제대로 못한 친구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연애같은건 먼 세상 이야기이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있었습니다. 연애란 걸 단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해 눈치가 없었던 것 뿐이죠. 미숙함이라고는 포장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지뢰를 밟았고, 정말 많은 상처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입대를 코앞에 둔 지금에 와서도 일련의 추억들이 제 실수로 마무리된 걸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습니다.

제게 또 다른 면의 성숙함을 가져다 준 그 이에게도 감사와 사과를 함께 전합니다.

그래도 통일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병역은 먼 옛날의 일이라며 언젠가 통일이 되길 기원해왔습니다. 통일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미성년인 제게 병역 역시 비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남북 두 정상의 악수를 기억합니다.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병역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2022년 7월 4일 지금에 와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잘 된 걸지도 모릅니다. 통일이 됐다면 모병제 전환이 아니라 어디 개마고원으로 배치받을 걸 걱정해야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마무리하며, 여러분 정말 감사해요.

마치 여느 도서에나 있는 서두의 저자의 말처럼, 그동안 도움을 받아오고 감사와 죄송을 느끼는 분들을 언급하며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자의 말이 책의 맺는 장보다는 여는 장에 있는 것처럼, 이 이름들이 군 생활이라는 새로운 일상의 여는 장에서 제게 힘이 되길 기원합니다.

수많은 숭덕고등학교 기숙사 동기들과 특히 그들 중 정지웅, 최승우, 최지훈, 이건우, “돼지우리”의 김강산, 김원우, 오정원, 안주현, 고강건, “오민서 팬클럽”의 오민서, 유현재, 김현강, 김민식, 이하연, “오충남의 자식들”의 김광재, 김민성, 김형준, 송종혁, 윤창, 정준희, 정형록.. 너희가 없었다면 대학 생활을 이렇게 잘 하질 못했을거야. 고맙다.

전남대학교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 2022 2학년 동기들과, “나무벤치 파티”의 노상훈 형, 조영상 형, 유정빈 형, 홍지민, 모아림 누나, “게임개발 동아리 PIMM”의 김제민 님, 강도희 누나, 김민서 누나, 김좌훈 형, PIMM 중에서도 날 누구보다 편안하게 해준 “김근성 밥사주기 프로젝트”의 김근성 형, 고민규 형, 정영도, 최정환, 박근우, 이창기.

같은 과 학생이 아닌데도 나를 너무 잘 맞아준 전남대학교 인공지능학부 21학번, 22학번 친구들, 특히 “21학번 번개장터”의 문성수, 오다영, 나유경, 서유리, 김아영, 임강범 형, 문서현 누나, 김수현과 미숙한 동아리 운영을 잘 따라와준 “인공지능 과동아리 Stolio”의 지연우 형, 나승연, 조연우, 이찬희, 김승윤, 임지환, 김봄, 장수민, 양소민.

무엇보다 한 식구같은 지능영상미디어인터페이스연구실의 이칠우 교수님, 성홍념 형, 황희재 형, 나광일 형, 정종호 형.

그리고 언급해드리지 못한 다른 분들까지,

기껏해야 남들 다 가는 군대를 너무 요란하게 가는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도 여러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