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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블록스를 컴퓨터 교육에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블록스를 컴퓨터 교육에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입

최근엔 조금 덜 관심을 받는 모양이지만, “메타버스” 부분으로 꽤 관심을 받았던 회사가 있다. 마인크래프트와 함께 메타버스 분야의 대표 주자로 인정받기도 했고 실제로 기업 공개 때 대단히 높은 주가를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로블록스다.

로블록스는 조금 낮은 연령대의 사용자가 많은데다, 비교적 쉽게 게임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의 프로그래밍 시작점이 되는 모양이다.

마인크래프트의 서버 실행 스크립트, 모드 설치 스크립트, 플러그인을 만들어가며 점차 프로그래밍에 빠졌던 제 입장에서는 꽤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로블록스를 컴퓨터 교육에 사용하기

로블록스가 프로그래밍의 시작점이 되는 케이스가 종종 생기면서, 로블록스 자체를 컴퓨터 교육에 활용하는 수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본격적으로 유니티를 가르치기엔 조금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게임 제작 과정을 운영할 때 자주 사용되는 모양이다.

제가 파트타임 강사를 하고 있는 학원도 로블록스 과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저도 로블록스 수업을 꽤 맡게 되었다. 모두 같은 로블록스 과정을 세 개 반을 맡았으니 결코 무시할만한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로블록스 수업을 직접 운영해보니, 로블록스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블록스를 컴퓨터 교육에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GUI 에디터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GUI 에디터로는 게임 세계에 물체나 이런 저런 요소를 배치하거나, 지형을 수정하거나 하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로블록스엔 공식 비주얼 스크립팅 솔루션도 없어서 본격적으로 스크립트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수업의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지게 되었다.

최소한 커뮤니티 주도 무료 비주얼 스크립팅 솔루션이 괜찮은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물체 배치만 반복시키기에는 수업 시수가 지나치게 많이 남는 것 이전에 그것을 수업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Lua는 입문하기 좋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다

물체 배치에서 벗어나 로블록스에서 스크립팅 언어로 채택한 Lua를 가르치기 시작해도 문제다.

Lua는 이미 프로그래밍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문법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로블록스를 위해 프로그래밍에 새로 입문한 경우에는 느낌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대표적으로 Lua에서 변수를 선언할 때 사용하는 local 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개념들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변수의 선언과 사용은 보통 프로그래밍의 초반부에서 배우지만, 변수의 스코프는 그보다 꽤 뒤에서 배운다는 점이다.

나는 변수의 선언과 사용을 첫 시간에 가르치니 만큼, 스코프를 같은 시간에 가르치기란 꽤 부적절한 면이 있다.

제어 불가능한 에셋 스토어

어쩌면 가르치는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수업 중에는 에셋 스토어가 득보다 실이 많은 기능이다.

에셋 스토어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너무 좋아서, 에셋 스토어에서 에셋을 불러오는 것에 아무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덕분에 수강생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에셋 스토어에서 다른 에셋을 불러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기 십상이다.

게임 제작 과정에서 꼭 수업에 따라와야하느냐 하는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항은 이야기할 여지가 좀 있다. 나이 어린 수강생들이 에셋 스토어를 사용하는 목적은 “로블록스 게임”을 하기 위해서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제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어떤 주제로 게임 세계를 만들든 수강생들은 에셋 스토어에서 “Minecraft Diamond Block”, “Nuke Bomb”, “Rainbow Magic Carpet”, “OP Chain Gun”을 불러와 마법 카펫을 타고 핵폭탄과 기관총을 쏘기 바쁘다. 혹은 다이아몬드 블록을 세계에 흩뿌리고 다니거나.

수업 주제에 맞는 게임 세계를 만들지 않았다 정도의 문제라기보다, 매 수업마다 같은 일만 반복하면서 수업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된다. 사실상 위에서 우려했던 “단순 물체 배치만 반복시키는 수업”과 다를게 없어진다.

수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자기 자신의 게임 세계 속에서 전쟁광 놀이를 하는 것도 꽤 긍정적으로 지켜봤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건 수강료를 받고 운영하는 수업에서는 이것이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무리

로블록스를 게임 제작 과정에 활용하니 유니티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사례가 꽤 된다는 건 알고 있다.

몇몇 학생들에게는 낯선 유니티 속에서 의미를 모른채 허우적대는 것보다, 잘 알고 있는 로블록스에서 평소에 손대지 않았던 기능을 조금 더 살펴보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익숙하기 때문에 원래 하던 익숙한 것들에 매몰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늘 먹던 익숙한 맛에 손이 더 가듯이, 늘 하던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컴퓨터에 무리가 갈 정도로 좀비를 스폰하고, 의미 불명의 무지갯빛 기관총을 가져와서, 월드맵을 파괴하는 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