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역할에 관해
우리는 의사소통을 위해 많은 것들에 단어를 붙였다. 단어란 것이 으레 그렇듯, 단어마다 가지게 되는 정형적인 이미지나 분위기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 어떠한 권위에 대해 일반적으로 붙이는 단어는, 다시금 권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어떠한 조직이나 기관, 그룹의 장, 리드, 책임자.. 이러한 단어는 각자의 역할을 잘 나타내므로 더 널리 사용된다. 그리고 널리 사용되니 더욱이 직관적이다.
하지만 종종 이러한 단어가 남발되면서 단어가 주는 권위를 훼손하거나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권위와 실제가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아 마치 “역할 놀이”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결과물 없는 학부과정 대학생 3인 스타트업에서 CTO를 맡고 있다고 자기소개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기분과도 비슷하다.
분명히 생각하건대, 요즘 사회에서는 굳이 나서서 사람들 사이의 격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집단에 함께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일 것이고, 굳이 다른 사람과 구분해서 본인의 격과 서열을 높일만큼 자기 자신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단순히 타인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것으로 인해 집단에서 갈등이 촉발될 수 있고, 이탈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체계 ≠ 서열
누군가는 단순히 역할을 서열화하는 것이 어떤 조직을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느정도 체계를 갖춘 집단을 지켜보면 사람들이 단계화되고 서열화되곤 한다. 대리, 차장, 과장, 부장과 같은 서열화된 직급이 바로 그것이고, 그룹, 파트, 팀, 분야등을 다단계적으로 쌓는 것도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열화가 곧 체계화라는 생각은 위험하고, 다양한 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현실을 지나치게 비약한 것이다. 서열은 체계가 필요할지 몰라도 체계는 서열이 꼭 필요하지 않다. 체계를 세우는 데 꼭 사람의 높낮이를 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 사이에 단계를 나누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서열을 정한다면 그 경과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것이 구시대적이고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필요한 수준에서 최소화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현직을 경험하지 않은 학부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장 수평적인 집단만을 기준삼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에서 서열화된 직급의 존재는 그 필요성과 효용이 충분히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임직원 전체에게 승진이라는 목표를 만들어 동기부여를 시킬 수도 있고, 업무의 분배와 책임을 명확하게 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도 서열화된 직급을 폐기하고 덜 단계적이고 수평적인 직급을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 계속해서 사내 문화 혁신에 “수평적인 구조”가 거론되는 것을 생각할 때, 비단 대학 생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책임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리는 책임을 만든다. 모든 권위에는 책임이 있다. 사람들이 권위나 서열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도, 그러한 위치, 그러한 높이에는 그만한 능력과 책임이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권위를 획득하기까지의 서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무언가가 사실은 없었다고 한다면 권위는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높을 수록 더 쉽게, 더 빨리 무너질 것이고, 더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잘 알 듯 이렇게 무너지게 되면 계속해서 권위와 서열에 도전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자신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적임자임을 반복해서 입증해야할 것이다.
마무리
사람은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잘못 설계된 서열과 권위, 역할은 집단 전체의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래서 고민하고, 경계하고, 조정해나가야 한다.
정말 그렇게 서열화된 권위가 필요한 것인가?
권위가 정말 조직 구성원에게 인정받는가? 혹은 허울뿐인 권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