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를 위한 스마트폰 환경은 없다
배경
은퇴 후로부터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이 되기까지, 할아버지는 꽤 활동적인 편이십니다. 그간의 일생에서 마주치고 함께했던 인연들과 계속해서 교류하거나 복지관, 노인회관 등지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좌에 참여하여 새로운 것을 공부하셨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스마트폰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은 새로운 배움의 대상이면서 몇 년을 사용하고 공부해도 정복하지 못하는 장벽과도 같은 것입니다.
복지관에서의 스마트폰 사용 강좌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함의가 담긴 UI 디자인도, 심지어는 스마트폰 사용 5년차에 이르는 경력도, 스마트폰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는 소용 없었습니다.
종종 가족들, 특히 제가 할아버지 댁에 방문할 때마다 도와드렸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명절에도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당일치기로 방문하므로 명절에 할아버지께 스마트폰 강의를 해드리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드리고, 당장 필요한 기능들을 설명해드리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설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 스마트폰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알림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머지 않아서는 통신사 대리점 직원이 기기 변경을 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떨어진 할아버지 댁으로의 방문이 결정된 것은 오늘로부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랴
저와 아버지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간 계기는 통신사 대리점 직원의 기기 변경 권유였습니다. 둘은 통신사 대리점 대신 직접 할아버지의 휴대폰을 바꾸어드렸습니다.
가족들의 반발이나 항의, 지역 사회에서 매장의 신뢰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방문하는 노인들에게 선 넘는 수준의 가격을 청구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마 할아버지가 가족들과 상의하겠다고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기기와 요금제 모두 변경되었을 것이란 점도 무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통신사 대리점은 결국 새 기기와 새 요금제를 판매하고 판촉하는 것이 본업이므로 그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으나, 집안 어른들에게는 대리점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마케팅에 취약할 것으로 보일 연세의 할아버지에게, 가족과 상의해보겠냐는 이야기 없이 요금제 변경과 함께 기기 변경을 시도한 대리점 직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기기 변경이 필요하다고 느꼈으나 사용자인 할아버지의 만류로 그동안 이야기를 못하고 있었으므로, 이 기회에 자급제 기기를 구매하여 기기만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어서 휴대폰 사용 중에 문제가 있으면 통신사보다는 삼성 서비스센터를 찾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악의적인 콘텐츠는 취약층에게 더욱 해롭다
할아버지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을 찾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국적 미상의 애드웨어였습니다.
시스템 최적화 앱, 삭제한 이미지 복구 앱 등으로 위장하고, 사용자가 계속해서 앱을 실행하여 광고를 시청하도록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앱들은 주기적으로 알림을 보내면서 사용자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자신들을 실행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휴대폰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애드웨어를 주기적으로 실행했고, 아마 애드웨어 개발자들은 광고 수익을 올렸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앱을 실행한다고 해서 그러한 유도 알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행한 날짜로부터 얼마 간 푸시 알림을 보내지 않는 앱은 괜찮은 축에 속합니다.
대개는 매일같이 알림을 보내왔고, 어떤 앱은 알림을 고정시켜 항상 나타나도록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애드웨어는 보통 다 제거해드리나, 터치 한 번으로 앱을 설치할 수 있으니 금세 애드웨어가 쌓이게 됩니다. 특히 개인 개발자가 만들어 배포해서 심의되지 않은 광고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앱의 광고를 통해 설치를 유도하는데, 본격적으로 악의적으로 설치를 유도하면 스마트폰 취약 계층은 그대로 당할수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경우 바둑 기보, 트로트 듣기, 만보기 등을 개인 개발자 혹은 소규모 개발사가 만들어 배포하는 앱을 설치하여, 문제의 광고를 접한 것 같았습니다.
실버를 위한 스마트폰 환경은 없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고 편의를 위해 도입된 스마트폰 기능들이 역으로 스마트폰의 사용을 강제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키오스크와 더불어서 시니어 세대에게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자주 문제제기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비단 우리 주변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어서, 가디언 지에서는 앱의 폭정이라며,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지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시니어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젊어 스마트폰에 적응이 쉬운 노인들은 나름 적응하고, 자신들의 사용 목적과 패턴에 맞게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그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규모가 되는 IT 기업들은 시니어 사용자를 신경쓰면서 큰 글씨 모드, 다양한 UI/UX 이론 도입 등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효과적인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고령자들이 사용하기에는 더 불편해졌습니다. 고령자들은 아이콘과 픽토그램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햄버거 메뉴도, 세 점 메뉴도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범람하는 아이콘과 영어의 나열 속에서 원하는 기능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수 년 간 할아버지를 도운 사람이 지켜본 고령자는, 저하된 인지 기능은 이러한 것들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워하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학습하더라도 금세 잊어버립니다.
확인과 취소 버튼만 존재하는 간단한 다이얼로그 창에서도 어떤 버튼을 눌러야 자신이 원하는대로 작동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만 합니다. 약한 수준이라도 다크패턴을 마주하게 된다면 정말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마무리
사실 이 글은 이번 한 주간 겪고 느낀 것을 정리하고 문제 제기하기 위해 작성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 의견을 제시하기에는 완전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데다 사실 위의 세 문단 모두 분야가 다른 이야기라 한 데 묶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스마트폰 사업을 둘러싼 지금의 환경은 실버, 고령자에게는 우호적이지 않으며,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현실을 의식하듯 노년층을 상대로 한 정책 혹은 의식한 정책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실버를 위한 스마트폰 환경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힌 사람들이 고령자가 될 것이니 큰 문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