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에 법인격 부여하기
시작하기 전에
결과적으로 법인격 획득 추진은 실패했습니다. 꽤 앞 단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지만, 어째서 대학생 동아리가 법인격을 획득하고자 했는지, 어쩌다가 실패했는지 서술하려고 합니다.
배경
누구나 대학 새내기 시절에는 동아리에 환상을 갖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쪽으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왠만한 규모의 학생 조직으로는 하기 어려운, 혹은 사업자 수준이 되어야만 하게 될 만한 일을 대학생 동아리라면 다들 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동아리 명의의 예산 통장이 바로 그러한 환상 중 하나입니다.
개인의 명의 앞으로 많은 이들이 지불한 돈을 묶어두면, 명의자 외에는 계좌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투명한 예산 집행을 관리감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실 더 어려움을 겪고 부담감을 느낄 사람은 공금을 관리하고 집행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구체적인 우려 중 하나로 최근에 토스와 같이 명의자의 계좌를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늘어났는데, 한 순간의 착각으로 공금 계좌와 다른 개인 계좌로 착오하여 주 거래 목적으로 잘못 사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게다가 매년 회장단이 재구성되면서 전년도 회비 잔액을 차기 회장단에게 넘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계되는 건 현금 자체일뿐 일체의 거래내역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거래내역도 인계하려면 별도의 기록물을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공금이 개인 명의로 관리된다는 사실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환상은 꽤 오래 유지되어서, 직접 동아리를 개설하기 전까지도 동아리는 모두 동아리 명의의 예산 통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금융실명제의 벽은 높다
어쩌면 자명한 사실이지만, 차명계좌 등의 우려로 인해 동아리 명의의 계좌는 개설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동아리가 실재하고 활동적이라고 하더라도, 법률 상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법률 상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히 계좌도 개설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2년 스토리오에서는 그리고 24년도 핌에서도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 기능을 이용해서, 계좌의 거래내역을 모든 회원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많은 우려 사항 중 지엽적인 몇 가지만 해결되었지만, 큰 우려 사항들이 해결된 것이니 타협적으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시작하기
동아리 명의의 공금계좌를 위해 동아리에 법인격을 부여하자는 생각은, 여름 방학 즈음에 회장단 조기 해산을 고민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2학기에 들어서 동아리 회장직을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원래 연 단위로 재구성하던 회장단이 매년 거래 내역을 날린 채 회비만 인계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걸 매 학기 반복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매번 계좌 이체로 돈을 옮긴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장단 조기 해산 준비 중 하나로서 동아리 법인격 획득과 동아리 명의 계좌 개설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법인격 획득 준비
많은 행정사사무소 블로그를 참고하건대, 동아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법인으로 보는 단체”, 임의단체로서 세무서에 등록하는 것입니다. 다른 법인격 유형보다 유연해서 설립, 구성 해제가 자유롭고, 변형도 용이합니다.
대표자에 대한 제약 사항도 치명적인 사항이 없습니다. 학부과정에서 법인 관련한 문제로 널리 알려진 것은 법인 문제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실업했을 때, 여전히 사업자로서 보거나 겸업하고 있는 직장 중 한 개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되어 실업급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적어도 임의단체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실로 동아리 등록에 적합한 유형입니다.
우리 동아리는 총 여섯 가지의 필수 서류만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승인신청서
- 대표자 등의 선임(변경) 신고서
- 정관(규약, 회칙)
- 대표자 증빙서류: 대표자 신분증, 단체 직인
- 회의록(총회 또는 이사회)
- 사무소 사용에 관한 권리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제출 양식이 정해진 서류는 국세청의 <세무서식> 자료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승인 신청서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승인신청서>는 가장 기본적인 신청 서류로, 동아리의 기본적인 정보를 작성하는 서류입니다.
이 서류를 작성하면서 대외적으로 “핌”, “게임개발동아리 PIMM”과 같이 통일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사용했던 동아리의 법률명을 “게임개발동아리핌”으로 설정했습니다.
법인회사의 상호명이 (1) 한글 상호명 필수 (2) 한글 상호면은 띄어쓰기 없이 모두 붙여쓰도록 규정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임의단체 명명 규칙도 큰 틀에서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같은 규칙을 적용했습니다.
대표자 등의 선임(변경) 신고서
정관
pimm-dev/articles-of-incorporation
많은 대학 동아리가 그렇듯, 우리 동아리 역시 이렇다 할 회칙이 없었습니다. 보통 뭔가 이유가 없으면 회칙을 작성하는 건 귀찮은 일에 가깝고, 동아리에게 있어 회칙은 굉장히 도덕적이면서 자명한 문항의 나열이 되거나, 어느 순간 지켜지지 않을 공허한 외침에 가깝습니다.
사실 대학 동아리는 사업체가 아니어서 규범적일 이유가 없습니다. 회칙이 힘을 가지면 동아리가 경직될 우려가 있습니다. 동아리 본연의 역할을 생각할 때, 좋지 않은 일입니다.
동아리 회칙은 기껏해야 교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종교에 관하 서약서>, 학교의 정책과 지시 사항에 대한 대응, 인수인계되어야 할 의사결정 수준으로 몇 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법률로서 지위를 인정받을 정관을 작성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정관은 서울NPO지원센터, 각종 스타트업 창업 정보 블로그의 정관 템플릿과 우분투한국커뮤니티의 정관, 교내 총동아리연합회의 회칙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대표자 증빙서류: 대표자 신분증, 단체 직인
일단 법률로서 식별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객체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니, 도장 역시 필요합니다. 다만 요구하는 것이 법인 인감이 아니라 직인인데, 법인 인감을 직인으로 대체한다는 것인지, 법인 인감도 필요한데 직인만 준비하면 된다고 착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싼 값에 괜찮은 직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회의록(총회 또는 이사회)
신규 단체 등록 과정 중의 회의록이기 때문에, 대면 회의 자리에서 단체 구성원이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확인하고 동의한다는 내용을 서명과 함께 회의록에 담는 것이 요구됩니다.
핌은 동아리 활동으로 매주 강의실에 모여서 회의 안건 처리, 팀 단위로 프로젝트 활동 상황 보고 같은 것들을 하니, 동아리 활동 내용을 요약하는 것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AI STT 녹취 툴을 사용해서 대화 내용 전체를 텍스트로 기록하면 되므로 회의록 작성이 부담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무소 사용에 관한 권리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단체의 주소지로 등록할 부동산의 사용권이 실제로 단체에게 있음을 증명할 서류가 필요합니다. 다른 서류와 달리 이미 실재하는 증빙 서류를 준비해야합니다.
우리 동아리의 법인격 획득 시도를 좌절시킨 원인이면서, 아마 임의단체를 등록하고자 하는 모든 대학 동아리의 가장 큰 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동아리는 학과에서 배정받은 동아리방이 있습니다. 따라서 신청 서류의 사무소 란에도 이 동아리방 주소를 사용했습니다. 다만 이 경우 학교로부터 사무소 주소를 동아리방으로서 사용을 허가해주었다는 <부동산 사용승낙서>를 받아야합니다.
동아리방은 학교에서 연구실로 관리되고 있고, 사용하지 않는 연구실을 동아리방으로서 배정받은 것이므로, 동아리 소재지로서 학교에서 증빙서류를 발급해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종합대학(전남대학교), 단과대학(공과대학), 학과(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전자컴퓨터공학부) 각 단계에서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므로 증빙서류 발급의 허가가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 결재되어야 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전남대학교 단계에서는 단순히 호실로, 공과대학 단계에서는 연구실로, 학과 단계에서는 동아리방으로 관리되고 있다면, 동아리방으로서 사용을 승낙했다는 서류를 학과 단계에서 발급해야 될 수 있겠지만, 학과 수준에서 이러한 서류를 발급하는 것이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사실 권한이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전남대학교는 국립인데다 법인화되지 않았으므로 국가기관으로 보는데, 국가기관의 시설물에서 이러한 서류를 발급하려면 기관장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 하위조직이 기관장을 대리해서 업무를 처리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희망적이어도 공과대학장,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학교 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학교의 각 사무실을 비롯해 광주 세무서, 주변 중앙동아리, 행정 전문가 등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의 나쁜 생각
어떠한 법인의 주소지가 거짓이라거나 주소가 변경되었음에도 제대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사례는 정말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사실 등록만 통과하면 된다는 마인드라면 자취방을 사무소로 등록하고 자취방 임대 계약서를 제출해도 될지도 모릅니다.
자취를 하고 있지 않은데다, 차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지 모르고, 이러나 저러나 하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마무리
임의단체 개설 신청을 위해 많은 것을 찾아보고, 많지는 않지만 사비를 들였으며, 동아리 내에 임의단체 등록이 가능할 것처럼 공지까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좌절되었습니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몇몇 은행기관과 행정사사무소가 대학 동아리의 임의단체 등록를 소개하는 것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이 생략되어있어서, 대학 동아리 입장에서 임의단체의 등록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윗 세대에서 하지 않은 일은 이유가 있다는 것.. 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