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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천천히 세차게

2024년 연말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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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글) …아주 천천히 세차게…con lentitud poderosa

…아주 천천히 세차게…con lentitud poderosa

24년 한 해 나름 무언가 해내긴 했지만, 군 생활을 계기로 다짐했던 것은 여전히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입대 전 바꾸지 못해 후회했던 것들, 철조망 안에서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것들, 바꿔내고야 말겠다는 것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바꾸지 못했고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저 군 생활에서 여가 시간에 했던 일들의 연장선만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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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데, 군대 동기들이 모두 전역하는것도 모자라 후임까지 전역하는 것이 야속했습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듯 했지만, 동시에 아주 세차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못마땅한 사실입니다. 혼자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것은 만성적인 우울감, 불쾌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패와 시행착오가 이어지면서 정서 문제가 심화되었습니다. 자존감은 점차 떨어져 종래에는 갈곳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창 무력감에 빠졌을 때 짧게 <이변은 없다>를 작성했습니다.(24.09.) 특별한 주제에 집중해서 이야기했지만, 지금 끌어안고 있는 그 어떤 문제를 넣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연말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이변은 없습니다.

분류된 저위험군

이러한 감정 상태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그리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심리 검사를 받아보았고, 심지어는 더 나아가 상담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24.05., 24.07., 24.08.)

다만 이러한 심리 프로그램의 목적이 고위험군을 찾아내는 것어서, 자살 고위험군이라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준이 아닌 제게는 효과적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지, 어째서 감정 기복이 심한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설명하면 할수록, 상담사는 눈 앞의 내담자에게 안도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결국 모든 심리 상담은 일회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밀려오는 감정을 홀로 견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습니다.

소외감

그 누구보다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갈망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집단 속에서 박종현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어떤 집단의 박종현도 박종현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든, 그 곳의 사람들이 박종현은 함께 하는 친구라고 생각하더라도, 심지어는 회장으로 있었던 동아리에서마저, 저는 그 곳에서 외부인이었습니다.

여름 즈음에 한 동아리 후배가 왜 모두에게 높임말을 쓰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유를 잘 설명하기 어려워서 혹은 제대로 밝히고 싶지 않아, 열심히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대답으로 납득해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이중적이고 모순적이게도, 모르는 어떤 장소에서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소외되는 것이 정말로 싫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도 박종현은 외부인이라고 확인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과로

이렇게 생겨난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어하는 데 선택한 대책은 비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을 끌어왔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를 신체적으로 틀어막은 셈입니다. 당연하지만 적절한 해결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점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심리 상담 중에도 일을 조금 포기하고 줄이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받을 정도였습니다.(24.07.) 하지만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며 당시에도 몇 가지 일들(#1, #2)을 억지로 끌고 갔습니다. 당연히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습니다. (24.08., 24.09.)

2학기에 들어서 온몸에서 경고를 보내고, 일평균 서너 시간만을 자고, 하루에도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몇 잔씩 마시고, 심장이 무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달성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그저 온 몸을 불사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브레이크 없이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기관차같았습니다. 혹은 이미 기약 없이 떨어지기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로

전역 직후 군 복무 중에 은퇴하신 전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다른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중단기의 진로 계획인 일본으로의 진학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다시금 연구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간 연구실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실이고 저도 인공지능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최근 컴퓨터공학의 주요한 연구가 모두 인공지능으로 몰려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진학 전략 상 인공지능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공부를 하는 것은 그렇게 재밌지 않았습니다.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인공지능은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소외감은 연구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심리 상담의 주요한 이야기거리에 어느새 연구실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마치 진로와 정신 건강을 천칭의 양 쪽에 매달아놓고 무게를 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문득 충분한 생각이나 준비 없이 그저 전 지도교수님이 권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구실 생활에 다시금 뛰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실 경험이 없는 이들이 왜 연구실에 대한 막연한 아득함을 갖는지 조금씩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실 생활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실 생활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을 안고 있었고, 너무 많은 일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연구실의 형에게서 ‘자신이 원하는걸 해라’, ‘단지 전략적으로 진로를 위해 인공지능을 파는 건 아닌 것 같다’, ‘남들 하는걸 굳이 따라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동의하는 내용이고, 저 역시 다른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빠져있다면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지금의 상황이 우스웠습니다. 남에게 참견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는 위의 이야기를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상황에서는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들을 꼭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더

올해의 정신적인 부담과 피로는 군 복무 시기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문제의 원인이 명확해서, 남은 복무 기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이 너무 느리다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상급자를 욕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적인 부담을 일시적으로라도 완화할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든 문제는 제 자신에게 있고, 원인은 흐릿하면서 다양합니다. 너무 입체적입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더 이렇게 생활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머리카락이 상당히 얇아진 느낌이 있습니다. 어쩌면 해결까지 남은 데드라인이 머지 않은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느낍니다.

다시 읽기

연초에 그런 조언을 들은 적 있습니다. 너도 결국에는 대학의 학부생이라고. 다른 보통의 대학생처럼 대학 생활을 살아보라고. 그리고 지금 하려는 일은 보통의 대학생이 하는 일이 아니고, 너를 힘들게 할거라고.

그 때 어떤 이유가 있었든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건 지금의 박종현이고, 그 선택의 결과로 이 지경이 된 것도 지금의 박종현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조언을 따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따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