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 중심 동아리 운영
배경
대학생에게 대학 동아리를 운영하기란 꽤 어려운 과제입니다. 보통 대학 생활에서 회장직이 존재하면서 가장 규모가 작고, 어느 정도 규격화된 집단을 운영하는 방법에 입문하게 되는 유형이 동아리입니다. 처음으로 조직의 0부터 100까지 조율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마주하다 보면, 조직이 상처를 입고 소모적인 일들이 이어질 수도 있고, 조직을 운영하는 본인이 꺾일 수도 있습니다.
대학 이전까지는 동아리는 학업 과정 중에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학업으로부터의 몇 안 되는 도피처처럼 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동아리 활동보다 매력적인 것, 더 급한 것이 꽤 많아서, 많은 동아리 구성원은 다른 많은 것들을 동아리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에 올려놓습니다.
본인 의사로 합류했음에도 활동이 저조한 회원을 탓할 수도 있고, 회장 본인의 역량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해 더 이상의 적극적인 운영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소수의 핵심 구성원 중심의 의사결정만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조직과 동아리 유형을 확인한 것은 아니나, 운영하는 것을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거나 어느 정도 관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일련의 경험에서 나름의 방법을 도출할 수 있었고, 지난 24년 게임개발동아리 핌에서 이 방법을 실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24년을 마무리하고 25년 회장단에 일련의 업무를 모두 인수인계한 이제, 1년간 실험했던 TF 중심 운영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전제
동아리는 활동의 활발함이 조직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면 이후의 신규 참여자가 동아리에 동화되기 수월합니다. 하지만 동아리가 소수의 몇몇 구성원에 의해 견인된다면 신규 참여자가 조직에 참여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점차 동아리에서 이탈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어 이탈 분위기가 만연해지면 조직은 죽어갑니다.
사실 몇몇 열성적인 참여자를 제외하고, 많은 회원이 동아리 활동과 이벤트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꽤 많은 동아리가 앓고 있는 문제입니다. 입학한 21년도 이래 오늘까지 전남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부 대부분의 과 동아리가 이 문제를 맞닥뜨리고, 심지어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맞은 것으로 들었습니다. 비단 특정한 학부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앙동아리와 인공지능학부 과 동아리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게임개발동아리 핌의 경우 기성 회원의 졸업, 비활동 전환, 탈퇴가 신규 회원의 90~110% 수준으로 동아리 자체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핌도 비슷한 분위기가 퍼져있습니다. 다수의 구성원이 동아리를 후순위로 설정하고 저조한 수준에서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어서 소수가 동아리를 견인하는 상황입니다. 핌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습니다.
TF 중심 운영
TF 중심 운영은 운영에 있어 TF(태스크포스, Task Force) 단위로 조직의 소요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소요마다 TF를 꾸려 각 TF에서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TF의 구성원이 정형화되지 않게 하는 데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동아리 구성원을 다양한 형태로 조합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아리의 운영에 관여하도록 합니다.
또 TF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성취 상황을 추적하여, TF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와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많은 상황에서 불명확한 목표는 오히려 단순한 책임 전가로 이어져 팀을 좌초시키고 역효과를 내었습니다. 때때로 이러한 TF 활동은 스펙이나 재미를 도모하는 대학 동아리 활동이 아니라, 스트레스받는 단순한 노동으로 변모했습니다.
위성을 끌어들이기
동아리에 들어와서 서로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경로로 친해진 사람들이 같은 동아리에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신규 회원의 시각에서 기존 회원의 관계가 콘크리트처럼 비쳐 동아리에 흡수되지 못하고 겉돌게 될 수 있습니다. 동아리 활동에 요구되는 시간과 비용이 다른 일보다 적어서,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해서 친해질 기회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동아리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동아리 활동을 견인할 만큼 긴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기간에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특정한 몇 명에게 할당하여 요구사항 성취라는 명분 아래 서로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합니다. 함께하는 시간에서 나오는 익숙함은 친밀감으로 이어집니다.
사일로의 문제는 사일로뿐이 아니다
많은 동아리에서 채택하는 운영 방식으로, “기획부”, “오락부”, “홍보부” 등으로 동아리 아래에 고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서를 여러 개 두고 발생하는 소요를 부서에 할당하는 것입니다. 꽤 오래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몇 가지 우려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우려 중 하나는 이러한 구성이 소위 말하는 사일로 형태의 구성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고립되고 구분되도록 하여 부서 그룹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전체 조직이 경직되게 할 수 있습니다. 동아리에 있어서 이것은 동아리 아래에 강한 그룹 형성을 유도하여 동아리를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긴밀하고 강한 그룹을 여럿 형성한다면 어찌 되었든 동아리 구성원 대부분이 동아리 내의 누군가와는 친밀하다는 것이므로 다행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일로의 규모가 큰 경우입니다. 많은 상황에서 집단의 규모가 일정 이상을 넘어가면 집단 안에서 또 집단이 분화됩니다. 부서 안에서 또 겉도는 구성원이 생기고 참여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생깁니다. 동아리의 문제를 각 부서의 문제로 옮겼을 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례에서 4~5명을 초과하는 집단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학 동아리 수준에서는 개별 TF 인원이 4명 내외면 충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성
핌에서는 다양한 전공과 역할이 혼재되어 있어서 구성원의 다양성은 곧 TF가 커버 가능한 실무 역량이 넓어짐을 의미합니다. 핌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구성원의 정형화를 지양하여 매번 새로운 조합으로 TF를 구성한다면, 각 동아리 구성원이 넓은 범위에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깊은 관계의 일부 구성원이 소수의 핵심 활동 인원으로 변모하는 것을 완화하고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동아리에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합니다.
다양성은 겉보기에도 중요합니다. 서로가 이질적인 구성원으로 팀이 운영된다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설정해 낼 수 있으면, 신규 유입이 동아리나 팀에 참여하는데 드는 진입장벽이나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 수 있습니다. “내가 끼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덜 수 있습니다.
적용과 실재
무시할 수 없는 중앙의 부담
실제로 TF 중심 운영을 동아리에 적용해보니, 이 방법을 적용하고 운영하는 사람에게 소요가 꽤 있었습니다. TF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목표 도출과 운영 기간 설정, 구성원 선정은 운영 측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TF 중심 운영이 고도화되면 이것 역시 인사팀 느낌으로 전담 TF를 굴릴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실험과 경험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다양한 조합으로 더 많은 활동을 도모하려면 더 많은 팀을 시작하고 매듭짓도록 해야 하나, 사이클을 더 자주 반복할수록 제게 더 많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습된 부담 때문에 사이클이 점차 길어지고 덜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정형화의 함정
이 방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실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구성원은 자원자를 우선 선정했다는 것입니다. 자원자 우선은 모두가 활발하게 활동에 참여할 때는 이 방법과 잘 맞는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핌의 경우 결국 자원자도 정형화되었습니다.
각각 생성된 TF 채팅방은 구성원이 비슷비슷하여 다른 팀의 업무 내용을 채팅방에 이야기하더라도 TF가 굴러가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학위수여식 대응 TF에서 신규 회원 모집 TF의 이야기를 꺼내고 일을 진행하더라도 문제없이 논의가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동아리 활성화와 다양한 팀 조합을 시도하기 위해 임의로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미리 공지한 뒤, 임의 조합을 설정하는 것이 더 나았을 수 있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다양성의 기준
사람은 워낙 입체적인 동물이라, 한 인물의 성향을 한정된 몇 개 요소만으로 투영하고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다양성을 도모할 때 추구하고자 하는 다양성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24년의 회장단은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개발), 불어불문학과(디자인), 중어중문학과(기획)으로 구성하고, 대외적으로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누구나 동아리에 참여할 수 있음을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동아리 내부에서 시간이 지나며 점차 외형적 다양성보다, 같은 회장단 구성원이라는 점과 24년 기준 기존 회원으로 구분된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서로 밀착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단순히 자연스러운 일로 치부하고 넘어갔더니 회장단이 회원의 활동 유입의 새로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사실 신경을 쓰지 않은 것 중 하나로, 회장단이 전체 구성원의 화합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는 당장의 소요에 맞춰 TF를 짜거나 구색 갖추기에 바빴지, 실제로 기존 회원과 신규 회원의 분리를 해소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와는 달리 다른 회장단 인원은 개인적 차원에서 따로 한 번씩은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긴 한 모양이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결론
그래서 TF 중심 운영은 실패했는가?
네. TF 중심 운영은 실패했습니다.
TF 중심 운영을 적용하면서 발생한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방법을 의도대로 적용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회원 분리 문제, 소수 중심의 동아리 견인 문제는 오히려 심화하었습니다. 특히 팀 조합을 다양하게 시도하지 못함으로써 동아리는 소모임의 연합체와도 비슷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실패는 아닙니다.
같은 팀으로 활동한 사람들은 24년 활동 종료 시점에서 높은 친밀감을 보였습니다. 동아리 활동 외에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모이는 팀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확인하게 된 것인데, 이렇게 꽤 관계가 형성된 사람 중에는 24년 이전에 서로 접점이 없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동아리에서 팀 단위 활동은 이전보다 활발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TF 중심 운영의 미래
TF 중심 운영이라는 단어는 임의로 붙인 이름이고, 실제로 방법론이라고 할 만큼 정형화하지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단어만 새로 붙인, 낡은 방법론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지난 1년이 첫 시도였으므로 이렇게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분간 적용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지 확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25년 동아리 회장에게 관련된 내용을 인계했습니다.
이 이론을 근거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동아리를 운영했을 때 어떤 일로 이어지는지, 또 이것을 단순히 대학 동아리에 그치지 않고 다른 유형의 조직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핌의 경우에는 이미 25년 동아리 회장이 회장단 구성 과정에서 회원들 모두가 의외라고 평가할 만한 인선과 조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성향과 활동 면에서 접점이 덜해 보이는 조합이 있었습니다. 올해의 회장단은 작년 제 실수를 반복할지, 새로운 케이스를 보여줄지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