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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개발동아리를 1년간 운영했습니다

대학생활 첫 동아리이면서 꽤나 다양한 경험, 감정을 맛보게 했던 교내 게임개발동아리 PIMM(핌)의 회장을 맡았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군 복무를 한 뒤에도 늦지 않다

전 동아리의 회장을 맡기 직전까지 군 복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동아리 활동을 군 복무로 잠깐 쉬는 모양새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그래서 동아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회장 역할을 잡게 되었습니다.

군 생활동안 접했던 정보는 게임개발동아리의 일반SW 개발동아리화 시도, 지도교수님의 은퇴와 동방 반납, 대외적인 성과의 부진, 실력파 회원들의 은퇴, 활동 저조와 같은 좋지 않은 지표들 뿐이었습니다. 동아리와 이별하거나 은퇴한 회원들과의 교류가 더 깊었기 때문인지, 동아리는 마치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아리는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동아리의 수명이 다 했다고 생각해, 사실 어느정도는 감정적인 이유로, 동아리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하위 활동을 분리 독립시키고 동아리를 해산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종현에게 대학과 사회를 가르쳐준 곳이 이 동아리이긴 했지만, 동시에 다양한 고난과 역경, 사건사고를 경험하게 한 것도, 정서적으로 몰리고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도 이 동아리였기 때문입니다. 동아리에 남아있는 애증의 감정은 애 보다는 증 부분이 더 컸습니다.

이미 지도교수님의 은퇴가 가시화되었을때부터 동아리 해산 이야기가 있었고, 최소한 제가 신규 회원이었던 21년도부터 있었으므로 다들 어느정도 납득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장을 맡고 상황을 보니 일반SW 개발동아리화는 무산되었고, 후임 지도교수님을 구해버렸으며, “동아리 안락사 계획”은 내부 논의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반론과 반발이 있었습니다. 바깥에서 바라본 동아리와 안에서 바라본 동아리의 상황은 꽤 많이 달랐습니다. 동아리는 반발하는 계획을 강행하고 성공할만큼 병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제 동아리에는 애를 느꼈든, 증을 느꼈든, 과거에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던 사람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계획은 점차 추진력을 잃어갔습니다.

다시 쓰기

일련의 계획이 추진력을 잃어갈 때 쯤, 은퇴하신 동아리 지도교수님, 새 지도교수님과 각각 면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건이 목적은 아니었으나 결국 동아리 건으로도 상담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당장의 문제는 남아있었지만, 많은 문제가 사라지고 해결되었습니다. 계획을 수립한 계기가 된 인물들은 이제 동아리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동아리 지도교수님은 이제 회장이 누군지 알고 있고, 새로 담당하게된 동아리에게 꽤 기대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결국 일련의 계획과 스탠스를 뒤집게 되었습니다. 신규 회원 모집을 시작하기까지는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습니다.

정책 도입하기

동아리의 수명을 연장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동아리의 다양한 정책들을 뜯어고쳤습니다. 동아리에서 느꼈던 부의 감정들은 무엇이 원인이었나 분석하면서,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윗 세대의 영광에 그만 기대기

동아리 대외 홍보에는 최근 3년간의 활동 성과만을 사용한다.

(부수조항) 동아리 대외 홍보에 <사우스포게임즈> 및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source: <전남대학교 게임개발동아리 PIMM 회칙, 의사결정사항> 24.02.25, 제 3항목

동아리 신규 모집 공고에는 제가 가입했을 때 이미 졸업한 선배님들의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가 여전히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동아리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절 포함해 스컬을 기대하고 가입한 많은 회원들을 실망하게 했습니다. 이제 그렇게 실망을 경험한 회원들만이 동아리에 남아있었지만, 신규 모집 공고에서 스컬의 이름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졸업한 선배님께 양해를 구하고 동아리에서 스컬을 지웠습니다. 이제 동아리는 스컬이라는 영광이 지어낸 그림자에서 한 발자국 벗어났습니다.

???인 분들은 사절입니다

source: <전남대학교 게임개발동아리 PIMM 회칙, 종교에 관한 서약서>
왜 그리고 어떻게 나는 동아리에 “종교에 관한 서약서”를 도입하였는가

전남대학교는 특정한 이해 집단의 외부개입에 계속해서 위협받아왔습니다. 외부개입에 시달리며 특이하게 변형된 전남대학교의 학생 자치와 학생 활동의 환경 속에서, 동아리가 활동 방향을 잃었을 때의 대응을 조금이라도 명문화하고 싶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잊지 않는다

신규 회원을 대상으로 한 온보딩 스터디는 성공했는가

동아리에 신규 회원으로 가입했을 때, 일말의 교육이나 스터디 없이 바로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굉장히 고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C#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고, 유니티 스크립트로서의 C#에 대한 이해는 더욱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의욕을 잃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번 신규 회원을 상대로 신규 회원 대상 스터디를 열고, 동시에 기존 프로젝트에 신규 회원을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스터디는 링크한 글에서 특기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꽤 크게 작용했습니다.

기존 프로젝트에 신규 회원 참여는, 기존 회원들 중 신규 회원을 교육하면서 앞가림할 수 있는 회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멘토-멘티 수준, 혹은 그보다 미약한 수준에서 어찌저찌 진행되다가 결국 좌초되었습니다.

흰 배경 검은 글자 맑은고딕

발표 가이드라인의 도입

동아리 정기 활동으로 활동 보고 시간을 가지게 되면, 발표자료에 많은 시간을 쏟는 팀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발표자료에 매진하니 정작 동아리 활동이나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시간이 모자라서, 결과적으로 활동이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꽤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발표자료 작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도록 가이드라인을 다소 강요했습니다.

발표 가이드라인은 발표자료는 흰 배경, 검은 글자, 맑은 고딕만 위주로, 예쁘게 보일 필요 없이, 필요할때만 만들기를 골자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회원들이 발표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모니터링하고 있는 팀들 모두, 팀 내부에서 발표자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사라지고, 다른 것들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금융실명제의 벽은 높다

동아리에 법인격 부여하기

학부 신입생일 때만 해도, 대부분의 동아리는 동아리 명의의 회비 계좌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개인 계좌로 회비를 관리하는 것은 굉장히 리스크가 커 보였습니다.

이 생각은 이후에도 변한 것은 아니어서, 동아리 운영 예산을 개인 명의가 아니라 동아리 이름으로 달아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아리의 법인격을 획득하고자 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과동아리야

동아리는 공과대학 전자컴퓨터공학부 소속의 과동아리로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구 전자컴퓨터공학부 학부생들로만 구성된 동아리였습니다.

동아리가 세대를 거치면서 타과 전공, 특히 디자인과 사운드를 담당할 예술 전공 재학생의 필요가 대두되며 종합대학 단위로 전공 무관하게 회원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전공 무관 동아리가 되면서 그동안 굉장히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동아리에 유입되었습니다. 24년 2학기 기준으로는 전자컴퓨터공학부와 그 전신 학과 소속의 학생의 비율이 상당히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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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니 이전보다 회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더 일어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농업생명과학대학 회원이나 사회과학대학 회원은 동방이 있는 공과대학6호관까지 10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공과대학6호관은 공과대학 건물 중에서도 외곽에 배치되어 전자컴퓨터공학부 회원들도 쉽게 발걸음하기 어려운 장소에 있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과 학생들로 구성되어서 동아리 활동이 아니어도 수업시간이나 점심, 방과후에도 우연히 동아리 회원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학교 총동아리연합회(총동연)에 중앙동아리로서 등록하고, 학교 중심지인 제1학생마루(학생회관)에 입주하고자 했습니다.

중앙동아리로 만들자

문제는 교내에 동아리방으로 사용할 공간이 매우 부족해서, 중앙동아리로 등록하더라도 학생마루에 입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source 분명 이전 기사에서는 대학측에서 명료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삭제되었습니다. 중앙동아리 등록을 확실하게 포기하게 한 문구여서 꽤 기억에 남는 언급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동아리에 등록하게된다면, 회칙에 따라 등록비만 지불하게 되면서 중앙동아리로서의 혜택을 얻기 어려워보였습니다.

그래서 중앙동아리 등록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몇 번째야

사실 중앙동아리화 추진도 이야기가 나왔다가 어느 순간 말 없이 사라지는 대표적인 안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짓고 싶었습니다.

분명 이전 회장이 당시의 총동연 비상대책위원장과 관련한 대화를 했던 모습도 있었는데 변한 것은 커녕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직전 회장도 중앙동아리화를 추진했다가 포기 결정을 했다는 것을 일련의 검토가 모두 마무리 된 뒤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배경 상황을 접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주의 깊게 중앙동아리화를 추진했을텐데, 인수인계 자료의 부재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인수인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야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사설로서 배경 상황, 전개, 결론 등등을 쭉 써내려갔지만, 누구나 이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요.

이름만 빌려쓰던 활동이 동아리 대표 활동이 되다

작년에 백준 온라인 저지 대회를 개최할 때, 대외적으로 내걸 마땅한 활동 주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의로 TF 모두가 가입되어있는 동아리의 이름을 빌려 대회를 열었습니다.

올해에도 대회를 열게 되면서 저는 대회 TF 총괄이면서 동아리 회장을 동시에 담당하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동아리가 공인한 활동과 마찬가지가 되면서 동아리 활동으로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2024 상반기 전남대학교 PIMM 알고리즘 파티를 반성하며

2024 하반기 전남대학교 PIMM 알고리즘 파티 대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상반기 대회가 마무리된 후 본격적으로 학교 활동을 이어나가며 알게 된 사실은, IT 관련 전공 학생들 사이에서 이 대회를 알고 있는 사람이 상당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꽤 커서, 신규 회원 가입 지원서에 자주 등장하던 스컬의 자리를 이 대회가 차지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백준 대회 개최는 동아리의 대표 활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반기 대회는 학교와 동아리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일을 병행하느라, 하반기 대회는 단순히 벌여놓은 것이 많아서 대회 개최가 마냥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잘 마무리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더 늦어서 영영 연락이 닿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양말대 작가님과 협업해서 솔브드에 양말대 에셋을 등록한 것과, 광주과학기술원 학생들과 함께 광주권 대학생 알고리즘 대회를 개최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둘 다 동아리 이름으로 대회를 이어나간 덕분에 성취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도 누군가의 애증 아니, 증오가 되었을 것이다

1년동안 동아리의 많은 것들을 고치고 수정했습니다. 연말에 와서 느끼건대, 21년도부터 보았던 동아리의 그 어느 순간보다 순탄하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원하는 그림, 동아리 회원 사이의 거리감이라던가, 활동량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만족스럽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동아리는 이전처럼 열심히 술을 마시는 동아리가 아니게 되었고, 번개나 밥약의 빈도는 사실상 죽은 것 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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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을 궤도에 올려두었지만, 신경쓰지 못한 부분, 미숙하게 대응했던 부분은 동아리에서 고사되어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학기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험적인 온보딩 스터디와 멘토멘티 정책의 참여자들이면서, 제 삽질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추진하다 좌초된 것들이 너무 다양해서 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동아리 단체복 제작, 활동 중 세미나 도입, 동아리 소개팅, 타동아리와의 교류…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GDSC 전남대학교 챕터(GDG on Campus: CNU)에서 다른 구성원과 마찰을 겪을 때면, 연초에 실수를 반복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GDSC에서 바라지 않아 개선을 요구했던 것들이 사실 1학기의 핌에서 내가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활동을 되돌아보고 정리해보니, 동아리에 불만을 가득 품고 시작한 회장 일의 결과로, 다른 불만과 증오가 생겼을지도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긴 씨앗이 동아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지만, 아마 그 변화가 나타날 때 쯤이면 저는 그 변화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이번 학기 지나치게 많은 일을 벌인데 대한 탈출 전략으로 중간에 회장직을 그만두려고도 했었는데, 어떻게 연말까지 잘 온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동아리의 알고리즘 스터디 활동을 보고 동아리에 가입하고자 하는 25학번 입학 예정자의 문의를 받았습니다.
알고리즘 활동은 동아리 안락사 계획에서 분리독립 1순위 활동이었는데. 위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제 모습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1년동안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진심을 다해 동아리를 운영했다고 많은 회원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