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교환학생까지 가서 한국 문화로 퀴즈쇼를 열다니,
도입
사가 대학에서 교환학생을 계속하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 언저리에, 대학의 국제 교류 동아리에서 「컬처 나이트」—Cultural Night이지만,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편의상 컬처 나이트라고 불렀다.—라는 행사를 연다고, 부디 참여를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행사에서는 유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여, 무대에서 공연을 하거나, 체험형 부스를 운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어필하게 되었다.
보통 자신있는 부분이 없다면, 한국인 유학생들은 이런 행사에서 협조성이 덜하다. 컬처 나이트는 무대를 오르거나, 체험 프로그램 부스를 운영해야하는데, 어느 편이든 부담이 되기도 하므로. 나도 무대 재능은 없고, 여러가지 이유로 컬처 나이트에는 방문만 해야겠다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학교 사무실인 유학생 교류실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니, 어쩔 도리 없이, 행사 주최 측 참여자로 이름을 올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한국인 팀 팀장으로 올라, 어느새 한국인 유학생 세션은 내가 대표로서 책임져야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도, 함께 하는 한국인 유학생들도, 한국을 대표할만한 무대 콘텐츠에는 실력이 없었다. 춤은 중학생 때 교내 경연대회가 마지막이었던데다, 노래는 한국 바깥에서는 잘 모를만한 것이나 일본 곡만 부를 수 있을 뿐이었다. 함께 나가는 유학생들과 부를만한 공통의 곡을 찾는 것도 어려웠는데, 사실 팀에서 춤이나 노래 무대는 이미 기피되고 있었으므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최초 참여안
그래서 처음에는 무대 행사 대신 체험형 부스를 내고 〈matcha〉 게임을 플레이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안을 내었다. 이 게임은 한글 자모의 조합 원리를 이용해서, 2048이나 슬라이딩 퍼즐처럼 자모 문자를 이동하여,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한국어 단어를 완성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다.
나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임을 어필했지만, 팀 내에서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겠냐는 이견이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또 그밖에도 다들 체험부스 운영이 자신의 노트북을 차출하는 형태가 될 것도 내심 우려하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올라간 이상, 내 노트북은 기어이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회전률을 생각하면 내 노트북 한대로는 불충분했다. 필요하다면 이 게임을 베이스로 커스텀한 새 게임을 만들겠다고까지 했으나, 결국 이 의견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한국을 주제로 한 퀴즈쇼는 너무 자의식 과잉 아닌가…?
내 의견을 이긴 다른 안은, 도전 골든벨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퀴즈쇼이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으니, 이 퀴즈쇼는 통한다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여기에 회의적이었다.
물론 나 역시도 우리나라 문화 파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현지 학생들과 다른 나라 유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어필하고 다녔다. 심지어 한창 《K팝 데몬 헌터스》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국적 자체가 나를 소개함에 있어서 일종의 어필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우리가 ‘한국을 좋아해 한국에 교환학생을 온 외국인 교환학생의 현지인 버디’가 아니라, 일본에 교환학생을 온 입장이다, 최소한 다른 교환학생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으면 일본보다는 한국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팀원들 자신조차도, K팝을 좋아하는 일본인 학생들과 마땅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본에 교환학생을 올 정도의 인물들은 한국의 문화보다는 일본의 문화를 더욱 향유하고, 일본이 문화코드를 공유하고 있었다. 교환학생들은 일본 현지학생들과 문화 코드가 더 맞았고, 한국인 유학생에 접근하는 현지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자국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한국인들과 문화코드를 공유했다.
어떤 스페인 친구는 매일같이 두근두근 문예부 캐릭터 프린팅 티셔츠를 몇장이고 가져와서 돌려가며 입었고, 어떤 카자흐스탄 친구는 양산형 패션(일반적으로 지뢰계의 일종으로 널리 알려진 패션의 일종이다.)만을 고집했다. 심지어는 이들 외국인 교환학생들에 의해 일본 학원물 러브코미디 아니메의 많은 플롯과 클리셰가, 이곳 현장에서 현실화되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의 공통 행동 양식으로서 기능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K팝을 좋아하는 일본인만을 타기팅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는 기대할 수 있는 참여인원 수가 너무 적었다. 모수 자체가 크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긍정적으로 비율을 잡아도, 기획 전체가 긍정적이게 평가될 수는 없었다.
곱게 망해주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퀴즈쇼 안이 채택되었다. 채택을 막기 위해 문제 제기했던 것들은 이제 내가 성공적으로 디펜스해내야만 하는 과제가 되었다.
프로그램 형식 바꾸기
제안된 내용으로는 무대를 기피하기위해 부스에서 일정 시간마다 사람을 모아 퀴즈를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위의 인스타그램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스가 독립적으로 가질 수 있는 공간도 좁았고, 무대와 매우 가까워 소리도 사람도 제대로 관리될 수 없었다. 따라서 퀴즈쇼는 정말로 ‘쇼’가 될 수 있도록 무대에서 수행해야만 했다.
나는 팀원들을 설득해 무대를 오르기로 했다. 나는 일본어 진행, 다른 학생들은 각각 프레젠테이션 제어 등의 무대 관리와, 영어 진행 등을 맡았다.
퀴즈가 지향해야 할 방향
앞서 언급했듯, 기대 참가자는 K팝을 좋아하는 일본인으로만 한정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 무대에 오르므로,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게 수행하여야 했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퀴즈이지만 한국에 대해 잘 알고있는가보다는 운에 따라 맞출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했다.

한국의 역사적인 인물을 고르시오: 각각 에도 레이겐 천황(일본), 명 경태제(중국), 조선 철종(한국)
이 퀴즈 형식 자체에도 딜레마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므로 공간을 갈라서 원하는 항목의 공간에 위치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행상 용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지선다나 O/X 퀴즈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많아도 네 문항을 넘기지 않는 것이 괜찮을 것이다. 퀴즈의 재미를 고려하면 생존률을 50% 이상으로 올릴 수는 없고, 최대 50%로 고려하면 몇 개 문제만으로도 탈락자가 급증하게 된다.
그래서 정답률 이슈는 대략 위와 같이, 가타카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헷갈리지 않을 문제, 일본에서 생활한다면 알아차릴 수 있는 유형을 동원해 탈락자 추이를 완화하려고 했다.
이렇게 문제를 내다보니 나름 재미를 붙이게 되어, 결국 의도와는 다르게 킬러 문제를 좀 넣기도 했다.
이 문제에서 제시한 문자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의 인명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인물의 일본어-영어 표기는 kawabata yasunari(카와바타 야스나리)다. 하지만 나는 인물과는 관계없는 자의적인 한글 문자열이라는 논리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순수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 “gawabata yaseunari”를 정답으로 제시했다.
이 문제는 한국어와 일본어 양 측을 이해하고 있거나 일본 문학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답률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1/4=25%의 정답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퀴즈쇼의 컨셉은
무대 스케줄 상 퀴즈쇼는 노래나 춤 공연 사이에 배치되어, 흐름을 끊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퀴즈쇼를 하겠다 하면, 적절한 대책이 없다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것 같았다. 내가 관객 입장이어도 갑자기 시작된 퀴즈쇼에 어리둥절해 상황을 따라가기에 바쁠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의 반응은 프로그램 자체가 재미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는 그러한 측면에서도 자신감이 없었다. 최대한 앞 무대와 맥락 없이 퀴즈쇼가 시작되는것은 막아야 했다.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예 유머스럽게 흐름을 드러내어 끊어버렸다. 이전에 캡챠들은 사용자의 흐름을 지나치게 끊는다고 비판하던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 캡챠 자체가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는 것, The Captcha Game 등에서 영감을 얻어, 퀴즈쇼 컨셉 자체를 캡챠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마무리
결과적으로 퀴즈쇼는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아직도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것이 아닌 학생들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지 불확실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지식을 겨루는 퀴즈쇼’를 개최하는 것에 긍정적이지 않다.
이번 좋은 결과는 ‘한국에 대한 지식을 겨루는’ 포맷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배제하려고 노력했고, 와중에 퀴즈쇼의 컨셉을 어색하지 않게 잡아낸 데에다, 우연히 운이 겹쳐 참가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준비 시기로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다시 퀴즈쇼 이전의 내 안을 주장할 것 같다. 다시 반복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올지 자신이 없을정도로 운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