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토론, 수용력
근래 들어서 나무위키에 접속하다보면, 대문에 나무위키의 편집지침을 전면 개편한다는 공지를 보게 된다. 나무위키의 신뢰성, 편향성에 있어 특히나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동시에 아마 사람들에게 가장 수용되는 위키일 것이고, 대개는 이에 동의할 것이다. 이제 대개의 한국인이라면 위키라는 단어를 접하면 위키백과보다는 나무위키를 우선 떠올릴 것이니 말이다. 그만큼 나무위키는 널리 퍼지게 되어, 한국인 공통의 일종의 범용 지식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나무위키의 성장을 보면 매우 고무적인데, 나무위키 이전의, 나무위키가 DB를 덤프해온 리그베다위키가 현역이었던 시기를 떠올려보아도, 이렇게나 다양한 집단과 세대에 걸쳐 이들 위키 사이트를 인식한 적이 없었다. 사실 어떤 위키 사이트가 있느냐 이전에, 위키라는 것이 대략적으로라도 어떤 것인지 짐작이라도 하는 사람도 손에 꼽았을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대개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제로 좋은 측면이 더 많지만, 대개는 사소한, 하지만 잘못 관리하면 꽤 위험한 부작용이 있다.
무한도전, 악질이름생성기
오늘날 MBC에 의해 유튜브에 제공되고 있는 무한도전 숏 폼 영상, 혹은 다른 각종 영상물 SNS에 무단 게시된 영상물의 댓글에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과거 무한도전의 인기, 무한도전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마치 심슨 시리즈와 같이 무한도전에는 미래를 예측했다고 할 정도로 지금을 표현하는 장면이 많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개중에는 “무한도전이 일부 극단적인 시청자들의 불편함과 민원을 지나치게 수용적으로 반영하여 재미없어졌다”는 것도 있다.
무한도전은 오랜 기간 동안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손꼽히는 TV 프로그램이 되었다. 또한 당시 예능 버라이어티 TV 프로그램에 없던 선구자적 기획을 가능한 한 계속해서 시도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긴 역사동안 논란이나 사건사고 없이 완전히 깨끗한 방송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청자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것은 곧, 프로그램을 수용하고 향유하며, 평가하는 시각이 매우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만약 젊은 1020 나이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소재로 삼았다면, 3040은 소외감을 느끼거나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우리 집에서는 무한도전 가요제 시즌만 되면 무한도전을 보기를 포기했다. 집안 구성원의 그 누구도 가요제나, 가요제에서 다룰 법한 곡, 그리고 가요제에 등장하는 게스트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 무한도전은 절대 이 프로그램에 나올것 같지 않았던 연예인이 고정 출연 멤버들과 새로운 곡을 선보이는 뮤직쇼가 아니었다. TV를 앞에 두고 저녁을 먹으며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가족의 오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요제가 얼마나 인기있고, 그 곡의 만듦새가 이후의 미래에도 두고두고 재생될 정도로 좋은지는, 최소한 당시의 우리집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무한도전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작은 사례이지만, 내가 만든 악질이름생성기가 SNS 인플루언서에 의해 바이럴되며 잠시간 반짝 화제가 된 적 있었다. 그 정도가 꽤 걷잡을 수 없어서,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소위 “실검”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악질이름생성기를 실검에 노출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개인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네이버 사용자 전반에 악질이름생성기가 노출되는 것은 꽤 적절하지 않은 콘텐츠를 포함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개인정보라던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창 때의 남학생들이 서로간에 여과 없이 나누는 부적절한 어휘 등이 말이다.
악질이름생성기의 타깃 사용자는 광주광역시 숭덕고등학교에 다니는 또래 남학생들의 극히 부분적인 일부 집단이었다. 하지만 실검의 영향으로 사용자 범위와 그 스펙트럼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이 사이트가 생성하는 몇가지 콘텐츠의 적절성, 이어서는 전반적인 내용의 바람직함, 더 나아가서는 이것을 만들어낸 내 의도나 인격이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의 회고에서도 밝혔듯, 나는 급팽창한 이들 사용자층에 대응하여 계획에 없던 수정을 몇 번을 더 거쳤다.
으레 그러한 법인데, 대상 집단을 좁게 설정할수록 더욱 깊이있고 집단과 밀접하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집단을 넓게 설정할수록 접근은 일반적이게 되고 깊이는 얕아진다. 과감하고 도발적인 표현으로 유명세를 얻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는, 자신들의 규모가 비대해지면, 비대해진만큼 넓어진 스펙트럼을 커버하기 위해 이전보다 덜 도발적이고 다소 점잖은 표현을 사용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의 초기 성장에 이바지한, 과감함에 매료되고 열광하던 원래의 시청자들은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며 떠나게 된다.
나무위키가 성장하여 전 국민적으로 인식되면서 역시 비슷한 것을 겪고 있다. 나무위키도, 그 전신이라고 부를만한 리그베다 위키는 더욱이, 대한민국 전역의 집단과 세대를 대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주요한 대상은 그러한 사이트를 기어이 사용할, 당시의 시각으로 소위 괴짜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당연히 이들 사이트의 원동력은 그 괴짜들 공통의 인식과 합의, 관습에 근거되었다. 다소의 호환성은 있겠지만, 이 때 설계된 프레임워크는 절대로 지금의 사용자 스펙트럼을 적절히 커버할 수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토론하시오
나무위키에 편집지침을 한창 만들어내고 있던 때, 편집지침은 오직 “끊임없이 토론하시오”라는 정신에 근거했다. 개발자 Q&A 게시판마저 제거해서, 개발자에 의해 이루어지던 일련의 의사결정은 모두 사용자들의 토론으로서 결론내려져야했다. 마치 치열한 논의와 토론이 없는 위키는 죽은 위키라는 시각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편집 지침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이 그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른 저자의 〈나무위키 그리고 템플릿화와 분쟁 회피 문제〉에서 분쟁 회피 성향이 가져온 변화에서 조명되었듯, 나무위키에서 논쟁적인 문서들은 다중관점(MPOV)의 적용으로 남의 입장에 손 댈 수 없게 되었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연히, 이 문서들은 이윽고 관심을 잃고 죽은 문서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끊임없는 토론을 요구하는 당시의 편집 지침이 미래 나무위키의 대책을 예비한 것같이 보인다. 분쟁 회피 성향이 심화된 오늘날의 나무위키가 과거에서 퇴화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토론중심주의는, 나무위키는 지침 상 편집 남용으로 규정되지 않은 공격 사례와 사보타주에도 취약하게 만들었다. 지침에 의해 편집 분쟁은 토론을 열어서 처리하는 것이 기본 정신이 되어있으므로, 나무위키의 프레임워크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려는 사람에게, 토론은 그 의도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좋은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나무위키는 항상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 간의 분쟁의 한복판에 있기를 자처했다. 당사자성이 얕은 갈등에 있어서도 그 갈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어이 나무위키에 적어내려고 하면서, 온갖 갈등과 당사자들의 성격을 재정의해내려는 싸움의 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나무위키는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나무위키에서 토론은 매우 소모적이고 리스크있는 행위가 되었다. 한 번의 수정보다 한 번의 토론이 훨씬 오래걸렸다. 토론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뷰징하거나 사보타주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사례가 점차 빈번해질 뿐 아니라 고도화되었다.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시간을 투입하게 하고, 계속해서 신경쓰게 만들었으며, 상대방이 인내심을 잃어버리면 바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김성회의 G식백과 〈게관위 폭로 사태로 알아보는 나무위키 편집전쟁〉 영상을 참고하면, 토론이 원래 의도와는 얼마나 다르게 활용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나무위키의 편집지침은 이들 어뷰징에 대응하기 위해 부칙을 덧붙여나가 프레임워크의 취약성을 보완하려는 레거시 코드 덩어리들의 집합이 되어버렸다. 마치 두꺼운 사례집과도 같게 된 것이다. 아마 나무위키에 상당히 몰입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 이 지침을 숙지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무위키의 규정은 최초부터 지금 규모의 나무위키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면적으로 손 보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