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사용 코딩에 대해 생각하다
바이브 코딩. AI를 써서 코딩한다는 그 표현은 내게 있어서는 폄하하는 듯한 표현의 일종이었다. 심지어는 내 입으로 그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나는 실력이 부족하여 AI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것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게, 생성형 AI가 이제 막 세상에 알려졌을 때, 학교에서도 소위 실력이 좀 부족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취급을 받으며 널리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AI를 사용했다는 표현은 「출처: 나무위키」보다 더욱이 자료를 신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마법의 표현이었다. 그만큼 초기의 생성형 AI들은 환각 문제로 그 신뢰도 측면에서 큰 문제가 있었고, 실은 아직도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는 당분간은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만약에 누군가 자기자신을 바이브 코더라고 소개한다면 그 사람을 신뢰 불가능하게 되거나, 실제 역량보다 저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driven 개발이 나름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지금에도 그렇다.
타이핑 수공업 숙련공
내게 있어서 IT 산업을 견제하고 규제하려고 시도하는 기성 산업과 사업자/노동자들은, 18세기 영국의 숙련공들이나 마차업자였다. 결국에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이어지거나 적기조례가 만들어지는데 이바지하는. 종종 인터넷에서 보이는 「없어질 직업을 보호해봐야 사회 발전만 정체된다」는 표현에는 다소 동조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IT 산업의 시도를 기성 사회가 규제로서 좌절시킨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ー물론 기성 사회와의 상생책 없이 변화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외면한 채 IT 산업의 자동화와 연결성으로, 그저 원래의 것을 파괴하기만 하거나 대체해버리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ー
이제와서 잘 생각을 해보면 내가 AI에 갖는 반감은,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겠지만은, AI가 점점 내가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을 완전히 무위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측면으로서도 꽤 강하게 작용했다. 꽤 최근까지도, 나는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그 프로그래밍 언어가 갖는 생태계를 새롭게 알아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이것을 취미로써 즐겼고, 동시에 내 자부심 중 한 가지를 구성했던 것이므로, AI의 침입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하던 것은 무언가 특별한 알고리즘을 짜는것이나, 수학적으로 복잡한 배경, 혹은 매우 높은 지식의 배경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문법, 다시 말해 규칙에 맞게 잘 작성만 해내면 되는 것이므로, AI는 이것을 정말 잘 해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윽고 AI가 점점 나 자체를 대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수공업 숙련공, 마차업자, 전화 교환원, 버스 안내양, 혹은 우버와 경쟁하는 택시기사, 로톡을 금지하려던 변호사협회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적기조례는 자동차를 막지 못했다
아무튼 간에 근래 AI, 특히 LLM은 꽤 발전했고, 학교 안에서는 거의 모든 대학생이 AI를 사용하게 되었다. 과제에 있어서, 어떠한 형태로든 AI를 사용하지 않은 제출물이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시점이 되었다.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학과 선배들을 보러 놀러 간 판교에서, 선배들의 이야기, 카페에서 직장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다보면, 이들 역시도 AI를 적극적으로 실험하든, 실제 업무에 사용하든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AI를 어떻게 사용해낼 수 있느냐가 정말로 어떠한 역량으로써 평가되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듯 하다. 이미 우리 학교에서는 이제 이 변화를 인정하고 학교 단계에서 AI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것이, 특히 배우는 입장인 학생에게는 더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으레 개인의 의사와는 관계가 없는 법이다. 내가 아니라 그 어떤 누군가, 혹은 그 어떤 집단이 나타난다고 해도 변화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마치 자동차를 규제하기 위한 영국의 적기조례와 같이. 미 국방부도 AI를 쓴다는데 내가 뭐라고 AI를 외면할 수 있을까.
오래간 생각을 이어내고, 이렇게 사례들을 마주하게 되니 비로소, 진심으로 AI를 마주할 결심이 서게 되었다. 거부하고 외면하기만 해서는 적응해낼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사용해내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