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프래그마타: 등장인물의 비현실적인 인격 설정에서 엿보이는 것들

프래그마타: 등장인물의 비현실적인 인격 설정에서 엿보이는 것들

프래그마타를 플레이하고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시작에 앞서

실은 게임의 플레이 형식 측면에서 나는 이 게임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데모에서 보여준 해킹 시스템은 적을 공격하는 도중에 미니게임을 플레이해야한다는 측면에서, 《니어 오토마타》 9S의 해킹 플레이와 유사해보였기 때문이다. 9S는 작중에서 해커이면서 정보수집가의 포지션으로, 적인 기계생명체를 해킹하여 공격하는 캐릭터이다.

니어 오토마타의 9S의 해킹 플레이는 분명 참신한 것이었으나, 9S가 주인공이 된 2회차 플레이는 힘겨웠다. 모든 9S의 기본 공격 스탯이 낮으므로 대개는 적을 해킹하여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적에 대해 해킹을 시도하며 미니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내게 계속해서 사고의 맥락을 전환시키는 일이었으며, 해킹을 시도할 때마다 씬이 전환되는 것, 씬 전환 전후의 애니메이션(아마 로딩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을지 모른다.)으로 플레이 흐름이 끊기는 것이 지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ー그래서 9S가 성장을 거치면서, 오버스펙의 적은 해킹만 시도하면 미니게임 없이 즉시 처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ー

하지만 실제로는 니어 오토마타의 경험과는 사뭇 달랐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해킹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니어 오토마타와는 달리, 프래그마타는 인게임에서 적대적인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해킹을 병행해야만 했다. 때문에 니어 오토마타의 해킹보다는 난이도가 조금 높았지만,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지 미니 게임 단독의 난이도는 오히려 니어 오토마타보다 쉬웠다.

예측 불가능한 갈등 유발적 존재, 성장하는 어린 아이

아이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아직 세상을 이제 막 배워나가고 있고, 실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며, 실패와 좌절, 자기 자신과 타자와의 반복되는 갈등을 통해 성장한다. 때문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은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나름의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으며, 동시에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 아무도 이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건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드러난 부정적이거나 다소 논쟁적인 사례를 꼽자면, 전자는 노키즈존이 있을 것이고, 후자는 학부모의 진상 민원 문제가 있을 것이다.

세간의 평가를 빌려, 프래그마타와 다이애나를 “출산 장려 게임” 이라고 한다면, 노키즈존이나 학부모 민원 문제는 이의 대척점에서 출산과 육아에 대한 피로도와 막연한 두려움, 혹은 더 나아가 어린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헤이트스피치로 이어지게 하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 유발적인 어린 청소년의 한 측면은 오늘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source: MBC

근래 청소년 관련 문제로 새로 대두되기 시작한 픽시 자전거 이슈. 이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과의 인터뷰에 인터뷰이 아이들은 흥분한 채 고양된 목소리로 ‘사람을 “받든가 피하든가”’ 할 수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서 자신 나름의 유머나 위트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의 고양감이 느껴질 정도다.

추측컨대, 인터뷰를 한 아이는 아마 자신이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 채, 실제로 자전거로 사람을 부딪혀도 기껏해야 생채기 정도 나는 ‘작은 사고’만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나이대의 아이들에게서 벌어지는 대개의 자전거 사고에서는, 사고라고 하기도 어려울, 피부를 크게 쓸리는 정도, 얼마간만 버티면 금방 회복하는 정도이다. 자전거로 사고가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 않느냐, 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 대답이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이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이해시키는 작업은 가르침에 의해 실현된다.

지구를 좇는 행동 조숙한 여자아이

다이애나는 작중 내내 일관적으로 모난 구석 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누구에게나 사랑받을법한, 이상적인 딸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울기, 떼쓰기, 화내기, 소리지르기같은, 인간 아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갈등 유발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이 일절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에서 다이애나의 AI로서의 특성이 부각되어 느껴졌다.

물론 여자아이를 그리는 것이므로, 미숙한 아이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오직 지식의 부재에서만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지구와, 지구에서의 생활, 혹은 휴의 행동이 자신에게 앞서 주어진 지식과 맞지 않았을 때 나타났다. 이러한 불균형성은 더욱이 다이애나는 AI구나, 라는 인식을 강화시켜주었다.


동시에 이 게임은 불균형적인 다이애나의 인격상을 유용하게 사용해냈다. 작품 중에 지구를 복제한 환경을 마주하면 보여주는 다이애나의 왕성한 호기심, 생동감 넘치는 웃음을 보고있자면, 지구로 돌아가고야 말겠다는 휴의 동기에 다이애나를 지구로 데려가 지구를 직접 보여주겠다는 또 다른 동기를 더하게 된다. ー이 부분은 숨김 없이 바닷가 환경에서 다이애나와 휴의 대화로 드러냄으로써 플레이하는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목표로서 제시하기도 한다.ー

게임엔 이러한 캐릭터성과 동기 제시를 바탕으로 “리드 어스 메모리”, REM 데이터라고 하는 수집 요소도 추가되어있다. 스토리와 캐릭터성, 플레이어의 동기가 이 수집 요소와 긴밀히 엮인 덕에, REM 데이터는 이 게임의 다른 수집 요소들보다 수집하는 이유가 더 당위적이라 느낄 수 있었다. 비교할 수 있는 콘텐츠로는 “미니 캐빈”이 있을 텐데, 미니 캐빈은 역시 재미있었지만 “왜 모아야 하는지”, “왜 맵에서 맥락 없는 부분에 배치되어있는지”ー다른 수집요소보다 조금 난이도 있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ー 부분에서 REM만큼의 당위성을 가질 순 없었다.

다만 이러한 의견은 REM 데이터의 기획력이 독보적이어서 그런 것이다. 플레이어의 휴식 장소인 쉘터에 REM 데이터를 위한 공간이 사방에 설정되어있었다는 점을 볼 때, REM 데이터는 어쩌면 부가 콘텐츠라기보다 메인 콘텐츠일지도 모르겠다. REM 데이터 컬렉션을 완성했을 때의 모습이 절경이었기 때문이다. 컬렉션을 모으면 아예 우리 어릴 때 놀았던 모래 놀이터나, 아기 놀이방 같은 것들이 되었다. 다이애나가 이 장소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은 꼭 그 나이대의 어린이 같았다. 그래서 더욱, 육아의 매우 단순화된 극히 일부의 측면만을 조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아이를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가정과 배우자, 자녀라는 전통적인 가치관보다는, 그동안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 이유와 아이의 잘못된 행동 자체만을, 반복적으로 마주해왔다. 근래 한때에는 비혼주의가 널리 퍼지기도 하고, 지금도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 아이 낳기에 좋은 사회 환경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으며, 2030의 사회 진출은 점차 늦어져 30세 사회 초년생도 이상하지 않게 된 데다, ‘노총각’, ‘노처녀’라는 단어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SNS나 인터넷에서도, 뉴스에서도, 심지어 방송 프로그램도 그렇다. 앞서 인용한 다양한 뉴스 사례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잘못을 목격하지만 그 이후의 교정이나 변화는 마주할 길이 없다.ー뉴스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성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ー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당시의 아성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 반대 위치의 《고딩엄빠》,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같은 프로그램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출산률 감소에 아주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거나, 아예 무관했더라도, 최소한 ー쿠르츠게작트의 표현을 빌려ー“한국이 끝나는”(SOUTH KOREA IS OVER)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 대책으로 이러 저러한 대책과 정책을 내 보았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현금성, 정책적 지원은 그래도 다소의 성과는 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캠페인이나 콘텐츠 측면에서는 ‘조이고 댄스’라는 괴물을 탄생시킬 정도로 절망적이다.

도입하면서 언급했듯, 출시 직후에 이 게임 프래그마타는 “저출산 대책”, “출산 장려 게임” 등으로 평가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육아의 즐거움을 추체험시키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평가를 빌려, 단순 게임 속 캐릭터 다이애나를 모두의 “딸랑구”가 되도록 했다.

프래그마타가 가져온 “딸랑구 신드롬”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계기로 국민 삼둥이가 되었던 대한&민국&만세,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 온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과 비슷한 측면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개별 회사의 두드러진 일회적이고 이례적인 사례이니, 우리 사회가 목전에 둔 도전 과제의 대책이나 대응으로서 활용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최소한 캠페인이나 콘텐츠 등지에서 지향점으로 삼을 법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